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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걸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다

2019/11/29


오랫동안 편집장으로 일했던 '지큐'를 그만둔 뒤에도 이충걸은 부지런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시인 이우성이 존경과 애정을 담아 그와의 특별한 인연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충걸은 아이다. 곧 예순 살이 된다. 그러나 그와 나란히 앉아 있으면 사람들은 그가 나보다 서너 살 많은 형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충걸은 비현실적인 사람이다. 어쩌면 세상에 한 명밖에 없는. 살면서 그와 비슷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조금이라도 닮은 사람을 본 적도 없다. 그는 특이해서 종종 낯설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무슨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게 아니다. 평범해 보인다. 아니다. 소년 같이 보인다. 배가 나오고 주름이 생겼지만, 여전히, 심지어 여전히? 소년 같이 보인다. 그런데 나이에 걸맞지 않은 이런 모습은 그의 특이함과 상관없다. 이충걸의 특이함은 언어에서 시작되고 언어에서 끝이…… 안 난다.

15년 전, 나는 이충걸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잡지를 넘기다 그가 쓴 글을 보았다. 숨이 막혔다. 나는 한 번도 그런 글을 쓴 적이 없었다. 나는 그 글을 종이에 옮겨 적으며 하나씩 외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절대 이충걸처럼 쓸 수 없다. 3년 후 이충걸과 일하게 되었다. 그때 그 잡지에 글을 쓰는 에디터로. 그는 나에게 ‘보았다’와 ‘봤다’의 차이, ‘되었다’와 ‘됐다’의 차이를 알려주었다. ‘좋은 것 같아’와 ‘좋아’의 차이도 알려주었다. 놀랍게도 고작 이런 게 내 운명을 바꾸었다. 나는 그전까지 단어와 문장을 의심한 적이 없다. ‘너무 맛없어’라고 쓸 때 ‘너무’의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한 적이 없다. 의심하고 고민하는 사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상태의 문장을 발견하게 된다는 걸 알지 못했다. 이충걸처럼 쓰고 싶어서 이충걸을 따라 했는데 이충걸은 나에게 ‘나 자신의 문장’을 찾으라고 말했다. 몇 년 후 나는 시인이 되었다.

작년에 이충걸이 '지큐'를 떠났다. 수십 년 동안 잡지를 만들며 언어 속에서 살던 사람이 그곳을 떠난 것이다. 소설가 박민규는 그를 ‘잡지계의 마이클 조던’이라고 불렀다. 그가 지닌 어떤 천재성이 그를 가만히 둘까, 궁금했다. 조던처럼 복귀할까? 라는 생각도. 하지만 그를 만나 16개의 놀라운 순간에 대해 들으며 그가 돌아올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믿게 되었다. 그는 여전히 언어 속에서 살고 있다. 엄마의 몸짓이 알려주는 언어, 창밖으로 넘어온 나뭇가지가 알려주는 언어, 공원의 바람과 공기가 알려주는 언어, 샴페인과 소주가 알려주는 언어 들을 매일 읽고 느끼며 살고 있다. “오전에 책을 읽고 오후에 글을 쓰고 저녁에 술을 마셔”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문장과 문장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의 공백을 유추할 수 있다. 그에게 배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감히 여기 ‘헌사’라고 적어둔다. 어쩌면 그가 세상에서 세 번째나 네 번째로 싫어할 단어. 내 인생을 바꾼 천재, 그를 알고 그의 문장을 읽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언어의 가능성을 깨닫게 해준 천재,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만이 자신을 지탱해준다고 믿는 천재에 대한 헌사.


이번 16p는 ‘이충걸의 PSALM’이다. ‘PSALM’은 찬송가 또는 시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는 ‘PEACE’가 더 쉽지 않겠냐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어차피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그건 이충걸의 언어가 아니니까. 



Editor 이우성 
Photographer 김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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